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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여가/책

리플리 증후군 모든 것이 가짜인 사람

한빛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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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2

|

by 한빛

19,114

지난 2015년 한 한인 천재 소녀가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미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인 SAT에서 만점을 받아 하버드대학교와 스탠퍼드대학교에 동시에 입학하게 됐다는 소식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동시 합격이 아닌 동시 입학으로 각 대학을 2년씩 다녀본 후 원하는 대학에서 졸업할 수 있도록 제안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대학들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고교 재학 중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MIT에 응모한 논문 덕분에 페이스북Facebook 창업자가 직접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는 보도도 나왔고, 스탠퍼드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 학위를 모두 딸 계획이라는 인터뷰 기사까지 소개됐다. 이 소식을 접한 한국인들은 자긍심을 가질 만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런 자긍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사가 보도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게 거짓으로 탄로 났기 때문이다. 해당 대학 담당자에게 문의한 결과 SAT만점, 스탠퍼드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 합격 및 입학, MIT 논문 응모까지 단 하나도 사실인 게 없었다. 오히려 이전부터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성적표 위조를 일삼았던 것까지 드러났다. 그런데도 그녀는 모든 게 진짜인 것처럼 너무도 뻔뻔하고 태연하게 행동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녀의 이런 행위와 심리 상태에 대해 전문가가 내린 진단은 ‘리플리 증후군 Ripley syndrome’이었다. 허구의 세계를 진실로 믿어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일삼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의미한다.

 

이 말은 미국의 소설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Patricia Highsmith가 1955년에 쓴 《재능 있는 리플리 씨 The Talented Mr. Ripley》라는 범죄소설의 주인공 이름에서 유래했다. 야망이 크고 머리가 좋은 리플리는 낮에는 호텔 종업원, 밤에는 피아노 조율사로 일하는 가난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재벌의 아들인 친구 디키 그린리프를 우발적으로 살해하면서 모든 게 바뀐다. 상류층을 동경했던 리플리는 그린리프의 사체를 숨겨놓고 그의 삶을 대신해서 살아간다. 초호화 생활을 하며 그린리프인 척하기 위한 거짓 행동를 일삼는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오래가지 못한다. 완전범죄를 꿈꿨지만 그린리프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모든 진실이 드러난다. 1960년 알랭 들롱 Alain Delon이 주연한 〈태양은 가득히 Plein soleil〉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다. 소설에서 리플리는 친구를 죽였으면서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또한 자신이 실제로 재벌 아들 그린리프인 것처럼

착각하며 산다.

 

소설이나 영화가 아니라 실제로 죽을 때까지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공주로 산 사람도 있다. 1922년 애나 앤더슨 Anna Anderson이라는 여성은 자신이 러시아 황실의 마지막 공주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Anastasiya Nikolayevna라고 주장했다. 실제 외모가 흡사했고 러시아 황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어 많은 사람이 이를 믿었다. 앤더슨은 러시아 황실에서 남긴 유산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걸었다. 진실이 밝혀진 것은 앤더슨이 죽고 23년이 지난 2007년이었다. 그녀의 사체에서 DNA를 채취해 검사한 결과, 신분은 물론 그녀가 행한 행위 모두가 거짓으로 드러났다.

 

리플리 증후군에 빠진 사람을 단순히 거짓말을 많이 하는 거짓말쟁이와 혼동할 수 있으나 분명한 차이가 있다. 거짓말쟁이는 거짓이 탄로 날까 봐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리플리 증후군 환자는 자신이 내뱉은 거짓말을 완전히 진실이라고 믿는다. 더구나 단순히 개인의 거짓말로 끝나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심각한 금전적·정신적 피해를 입힌다.

 

 

 

 

 

일상에서 나를 살리고 살리는 최소한의 지적 무기

생존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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